[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안석관광농원
– 주소 : 경기 화성시 남양읍 안석길140번길 2- 전화 : 010-9804-6622
– 민간 캠핑장이고,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음.
– 운영기간 : 봄,여름,가을,겨울
– 운영일 : 평일+주말
– 업종 : 자동차야영장,카라반,글램핑
– 상주관리인원 : 1명
– 자동차야영장 : 13면
– 글램핑 : 5면
– 카라반 : 1면
–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
– 화장실 : 3개
– 샤워실 : 18개
– 개수대 : 19개
– 화로대 : 개별
– 소화기 개수 : 22개
– 방화수 개수 : 1개
– 화재감지기 개수 : 5개
– 부대시설 : 전기,무선인터넷,장작판매,온수,마트.편의점
– 주변이용가능시설 : 농어촌체험시설
– 애완동물출입 : 불가능
◎ 주위 관광 정보
⊙ 라바팜스토리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로368번길 127-1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색적인 곤충, 파충류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단체예약 혹은 글램핑바베큐체험존을 이용시에만 동물관람관에 입장 가능하다.
외부에 트램펄린과 미끄럼틀 등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터가 있으며 글램핑 바비큐 체험존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 안석낚시터
![[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1 안석관광농원](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19/2747219_image2_1.jp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활초길 214-17
약 66,000㎡의 평지형 저수지이며 수초가 많은 낚시터이다. 수심은 80cm에서 잔교 중앙은 1m 50cm까지 된다. 토종 붕어를 기본으로 하며 매주 중국 붕어를 방류한다. 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캠핑 데크에서 캠 낚시도 가능하다. 다대 편성 가능하고 잔교나 수초대 2편성이 기본이다. 저수지 제방을 제외한 전 구역이 갈대와 수초로 둘러져 있고 도심 낚시지만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일몰 명소이며 취사는 관리실 앞 취사장을 이용할 수 있다. 꾸준한 입질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고 안석 하우스 낚시도 운영하고 있다.
⊙ 홍난파 생가
![[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2 안석관광농원](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03/2483103_image2_1.jp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홍난파길 32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여명기를 개척한 난파 홍영후(1898~1941년)의 생가이다. 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 홍순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12년 YMCA 중등부를 졸업하고 1915년 조선정악전습소양악부를 마친 뒤 동 전습소의 교사가 되었다.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귀국하였으며, 1920년「봉선화」를 작곡하였다. 1922년 연악회(硏樂會)를 창설하였고 1925년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한편 한국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소설도 발표하여 문학적 재질도 보였다.
1926년 다시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교에 편입하고 이듬해 도쿄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1929년 귀국하여 중앙보육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1931년 미국으로 건너가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연구하고 1933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이화여전 강사를 지낸 뒤 경성보육학교 교수로 전임하였다. 1935년부터「백마강의 추억」등 모두 14곡의 대중가요를 나소운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1941년 8월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어 43년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봉선화」,「성불사의 밤」,「옛동산에 올라」등 가곡과,「달마중」,「낮에 나온 반달」 등의 동요곡이 있다.
현재의 생가 건물은 당초 멸실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한 것으로 목조 초가 4칸의 ‘ㄱ’자형 구조이다. 방 2개와 부엌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집에는 아담한 마당이 딸려있고 건물 처마 밑으로 난파의 초상화와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을 찍어놓은 사진 몇 장이 걸려 있다. 아늑한 마을에 자리한 초가를 둘러보노라면 ‘고향의 봄’ 가락이 곳곳에서 들리는 듯 하다.
⊙ 누림아트홀
– 홈페이지
https://art.hcf.or.kr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2017년에 개관한 누림아트홀은 모두누림센터 내에 있는 클래식, 연극, 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수용할 수 있도록 최적의 무대기술 시스템을 갖춘 다목적 공연장이다.
메인 무대에는 최고급 반사판과 초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으며, 오토 컨트롤이 가능한 조명 및 세트 배튼(Batten)시스템을 갖추었다. 또한 최신식 무대조명 시스템과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보다 생생한 사운드를 즐길 수가 있다.
백스테이지 공간에는 단체 분장실과 개인 분장실, 스텝 대기실이 구비되어 있으며, 피아노와 음향 시스템을 갖춘 연습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지하 1층 로비공간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휴식 공간으로 문화 예술 관련 서적이 비치되어 있어, 공연 관람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이용이 가능하다.
주변 관광지로는 화성 공룡알 화석지, 제부도 해안산책로, 화성정용채가옥, 화성융건릉, 남양향교 등이 있다.
⊙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 홈페이지
https://tour.hscity.go.kr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신빈 김씨(1406~1464)는 세종의 후궁이며, 본관은 청풍이다. 본래 내자시(왕실에 필요한 각종 물자의 공급을 담당한 곳) 여종이었으나, 세종이 즉위하던 해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이 되어 중궁전으로 보내졌다. 1435년 후궁으로 계양군 등 5 왕자를 낳았으며, 5번째 아들 영해군을 낳은 뒤 소의, 1439년 귀인에 올랐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세종이 죽자 신빈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단종이 다시 환속하도록 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신빈김씨는 6남 2녀를 낳았으니 계양군 이증, 의창군 이강, 밀성군 이침, 익현군 이관, 영해군 이당, 담양군 이거이며, 딸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떴다.
신빈김씨 묘는 봉분 주변으로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 앞에 석상과 향로석, 장명등이 놓여 있고 그 좌우로 문인석 한쌍이 건립되어 있다. 이 중 복두공복 형태의 문인석만 15세기의 작품이다. 묘 동쪽에는 비각이 있으며 이곳에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1465년에 건립한 신빈김씨 신도비는 하엽수방부(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이며, 김수온이 글을 짓고, 안혜가 글씨와 전서를 썼다. 전서로 ‘신빈김씨묘비’라고 새겨져 있어서 신도비임을 알 수 있다.
세종의 많은 후궁들 중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고, 인품이 온화한 덕분에 화성시에 조성된 신빈김씨의 묘역을 능이나 원에 못지않게 깔끔하게 단장되어 관리하고 있다.
⊙ 남양성모성지
![[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3 안석관광농원](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07/2480807_image2_1.jpg)
– 홈페이지
http://www.namyangmaria.or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순교지로서의 남양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 기록에 나타난 순교자들
– 김 필립보(1818~1868) 충청도 내포사람으로 조모의 가르침에 따라 입교하려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후 후일 반대하던 부친과 함께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전교도 열심히 했고 사제의 공소 방문 때는 사제의 성무를 도왔으며 교우들이 바른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병인년 대박해 때 피신하여 살다가 1868년 남양 감영 포졸에게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붙잡혀 남양으로 끌려왔다. 이 부부는 온갖 형벌에도 배교치 않았으며 한달 동안의 옥고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박 마리아(1818~1868) 순교자 김 필립보의 아내로 1868년 남편과 같이 남양 감영 포졸에게 잡혀서 남편과 함께 남양으로 끌려와 한달 동안의 옥고와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남편 김필립보와 같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정 필립보(?~1867) 경기도 용인의 것옥골에서 살았는데, 1866년 11월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붙잡혀 가옥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해 1867년 1월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 김홍서 토마(1830~1868) 수원 갈매리 사람으로 1868년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아내와 함께 감옥에 끌려왔다. 아내는 배교하여 풀려났으나, 김홍서 토마는 끝내 배교치 않고 김 필립보 부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배교한 아내는 김홍서 토마가 순교하자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 순교자 김홍서의 나이는 38세였다.
⊙ 봉림사(화성)
![[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4 안석관광농원](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03/1593303_image2_1.jpg)
– 홈페이지
http://www.grandculture.net/hwaseon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 비봉산에 있는 사찰인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고,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아 봉림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621년(광해군 13) 안모와 자현이 중수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였고, 1884년(고종 21) 무렵에도 중건하였다.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며, 사찰에는 보물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1978년에 불상을 금으로 다시 색칠하는 [개금불사] 과정에서 복장에서 사리와 유래를 적은 기록과 불경이 발굴되면서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이를 통해 불상의 제작연대(1362년. 고려공민왕 11)또한 밝혀졌다. 1979년에 아미타여래상의 복장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 삼층 사리탑을 세웠으며, 1992년에는 요사를 개축하고, 1998년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봉림사의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봉향각·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복장에서 나온 감은자화엄경 등 유물 10여 종은 별도로 91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 중 [묘법연화경] 5종 13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용주사에 보관 중이다.
보통 사찰하면 주변에 숲이 울창하고 조용한 공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화성 봉림사 입구는 산업화로 인해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다 보니 공단과 함께하는 사찰이 되었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사찰까지 약 100~200미터 정도 되는데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범종루는 출입구가 있는 2층 구조로 석축 위에 올려져 지어졌다. 대문역할을 하는 범종루는 단청이 화려하고 멋스러우며, 대웅전은 좌우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찰 진입전 주차장 입구 부근에 무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정상까지 700미터 정도 거리이다.
⊙ 남양체육공원
![[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5 안석관광농원](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02/3004302_image2_1.jpg)
–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hsview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는,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화성 남양체육공원은, 게이트볼장, 축구장, 풋살장, 운동기구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남양천과 인접해 있고 생태습지원, 연지원이 함께 있어 자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체육공원이다. 체육공원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바로 옆에는 깔끔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관리사무소가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잔디밭을 양옆에 두고 깔끔하게 보도블록을 깔아놓은 산책로가 있고, 산책로는 다시 게이트볼장으로 이어진다.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게이트볼장에는 커다란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즐길 수 있다.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과 테니스코트 그리고 주변으로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는 트랙을 만들어 놓아서 뛰거나 걷는 것에 무리가 없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벤치가 놓여있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주변으로 나무들을 빼곡하게 심어 상쾌한 공기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방범용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늦은 시간에도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다.
남양체육공원의 또 다른 매력은 남양역사문화공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인데, 남양도서관 옆 터널을 지나면 너른 휴게뜰이라는 넓은 광장이 있어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퀵보드 타기를 즐길 수 있다.
너른 뜰 곳곳에는 그네 의자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아카이브 부스가 비치되어 있어 자유롭게 책을 꺼내어 볼 수 있고, 오리정 뒤쪽에는 뒷동산을 오를 수 있도록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 너른공원
![[경기도 화성시] 안석관광농원 - 도심과 가까운 복합 캠핑장 6 안석관광농원](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28/3004328_image2_1.jpg)
–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hsview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너른공원은 방아다리공원과 2021년 대한민국 조경대상 조경학회장상을 수상한 화성시 동탄 일반산업단지 미세먼지 차단숲이다. 너른공원과 방아다리공원은 연결되어 있는데 너른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에 상가와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너른공원 산책로는 쭉 뻗은 길이 매력적이며 공원 한가운데로 바람이 지나게 되어 있어 좋다. 삭막한 건물 사이에 나무와 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나쁜 공기도 정화해 줄 것 같은 곳이다. 너른공원을 걷다 보면 게이트볼장과 풋살장 그리고 여러 가지 운동시설들도 있다.
너른공원 끝자락에는 방아다리공원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방아다리공원에는 농구장, 족구장, 테니스방, 야외무대, 운동시설들이 있고 테니스장과 농구장 주변으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정자와 의자들도 있어 운동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너른공원에서 시작해 방아다리공원까지 산책로가 잘 조성된 이곳은 미세먼지 차단 숲답게 산책로마다 나무와 풀, 물이 보이는 곳으로 인공적인 느낌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높은 다양한 수종들을 활용한 혼합림을 조성해 쾌적한 대기 환경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일몰 30분 후~23:00까지 공원 내 경관조명들이 환하게 밝혀져 예쁜 야경을 보며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기 좋다.
⊙ 남양향교
– 홈페이지
https://tour.hscity.go.kr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글판동길15번길 18-3
남양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와 성현의 가르침을 교육하던 교육기관으로, 고려말 조선초 약 625년의 역사를 품은 남양향교는 유림들이 학문을 수양하면서 위인들을 배향하던 곳이다. 1397년에 남양부 음덕리 면역곡동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18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남양향교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다. 그 외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 그리고 제사를 준비하는 수복실, 홍살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7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중앙에 있는 건물 좌우에 날개를 붙인 듯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어 매우 독특하다.
음력 2월과 8월 정일에 열리는 [남양향교 석전대제]는 공자를 포함한 25성현에 대한 제례 의식으로 중요무형문화재이며, 이 외에도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 분향을 진행하고 있다.
대성전 옆쪽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1982년도에 지정당시 나무의 나이가 130살이었으니, 남양향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남양향교가 위치한 화성시 남양읍도 도시화되면서 향교와 빌딩, 아파트가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고장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