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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씨스타캠핑관광농원

씨스타캠핑관광농원 위치 및 연락처

  • 주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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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종: 일반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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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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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길 49

모포항은 낚시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작고 아담한 항구지만 갑오징어, 광어, 가자미, 고등어, 볼락, 참돔 등 계절 따라 잡히는 어종이 다양하다 보니 낚시객들 사이에 유명해졌다. 또한, 일몰과 일출, 갯골 촬영을 위해 출사를 나오는 사진작가들이 많다. 모포항에서 북쪽 방면으로 이동하면 구룡포항, 구룡포 과메기 물회 거리,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 있어 낚시뿐 아니라 연계 관광에 나서기도 좋다.

(출처 : 퐝퐝여행)

광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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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정동길77번길 11-2

광남서원은 조선 초의 문신 황보인(1387~1453)과 그의 아들 황보석, 황보흠을 배향하기 위하여 1791년(정조 15) 지방 유림들과 후손들이 세운 세덕사가 시초이다. 이후 1831년(순조 31) 임금으로부터 사액서원으로 승격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1900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황보인은 사간원 정언, 집현전 학사, 형조 참의, 강원도 관찰사,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이후 단종을 보좌하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역모죄로 몰려 살해되었고, 단종 복위와 함께 신원이 회복되어 충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충정묘, 강당인 숭의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서원 뒤쪽에 유허비가 있다. 영천 황보씨 문중에서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낸다.

학삼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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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학삼길 51-3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학삼서원은 1592년(선조 25년)에 이대임(1574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이대임은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장기전투와 경주전투 등에 참가하였고, 세상을 떠난 후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증직 되었다.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그 뒤 1907년에 복원하였다. 강당의 후면으로 사당이 배치되어 있는 전학 후묘의 형태이다.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사당인 경충묘, 강당인 경의당, 기숙사이자 학습공간인 동재와 서재, 문간채 등 총 5동이다. 경충묘에는 이대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경의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금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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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길191번길 25-12

금산서원은 1707년(숙종 33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허진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허진수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난 영재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도산서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1574년(선조 7년) 나라에서 그의 학행을 가상히 여겨 통정대부의 품계를 내렸으며, 만년에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진력하니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이라 불렀다. 금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다가 1909년 유림에 의해 사당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경모사, 4칸의 수덕헌, 3칸의 동재, 외문, 4칸의 고사 등이 있다. 사당인 경모사에는 허진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수덕헌은 강당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은 헌관 및 별유사, 재석실로 사용하며, 마루는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재원의 출입문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동재는 재원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는 곳이다.

포항 장기유배문화체험촌

포항 장기유배문화체험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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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장기로 452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장기로 결정된 유배인은 모두 149회 200여 명에 이른다. 대표적인 인물로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있으며, 이들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고자 유배문화체험촌을 기획하게 되었다. 당시 중앙정계에서 내로라하던 정객들이 머물면서 학문연구와 문풍이 되살아난 대표적인 곳이 장기면인 것이다.
장기면은 장기읍성, 장기향교, 서원 등 역사의 현장이고, 신창 일출암, 소봉대 등 빼어난 자연경관과 관련된 여러 문학작품을 가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장이다. 이에 더해 장기면은 과거부터 유명한 해돋이의 명소였다. 그 일화로 일출암의 일출은 육당 최남선이 조선 십경 중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였고, 장기읍성의 일출은 회제 이언적 선생이 「장기동헌」이란 시를 남길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신창 간이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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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리

신창 간이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여름철에만 일시적으로 개장했다 폐장하는 간이해수욕장이다. 일반 해수욕장에 비해 아담하지만, 해변이 길어 산책만 하기에도 좋다. 백사장의 모래는 곱고 해수욕장의 수심은 얕아 남녀노소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신창 간이해수욕장 주변에는 신창 2리 어촌체험마을을 비롯해 음식점, 숙박업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해수욕장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경주의 유명 관광지가 즐비하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포항의 여러 해변이 펼쳐져 연계 관광이 용이하다.

장기척화비와 근민당

장기척화비와 근민당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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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길 99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의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장기척화비도 그중의 하나이다. 비는 반듯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며, 비몸의 네 모서리와 윗변의 양끝을 단정히 다듬어 놓았다. 앞면에는 비문을 새겨 두었는데 내용에는 “서양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는 강한 어투의 경고를 적고 있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이후 같은 해에 일제히 세운 것으로,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되면서 대부분의 척화비들은 철거되고, 이처럼 몇 기의 비들만이 곳곳에 남아 옛 역사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원래는 장기읍성 안에 있었으나, 1990년에 장기읍사무소 정원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근민당은 장기현 관아 동헌 건물로서 현감이 공사를 처리하는 곳이다. 노후되어 장기읍성에서 1922년 이축하여 장기면사무소로 이용하였으며, 그 후 1960년 현 위치로 이축하혔다. 현재는 장기면사무소 별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장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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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성길 92

장기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자,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었다. 정조 9년(1785)에 마현동으로 옮겨 지었고, 1931년 군수 김영수가 읍성 내에 있던 구객관을 수리하고 위패를 모셔 지금의 향교로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방경·서극인·이대임·이눌 등 향교에 모시고 있던 위패를 용암석굴에 옮겨 놓아 위패만은 무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향교를 옮겨지었을 때 덕계 임재화가 대대로 살던 자기 집터를 내놓아 향교 재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 우리나라의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일출선원(포항)

일출선원(포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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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정동길 551-74

일출선원은 일출암을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등록하면서 선원으로 바꾼 것이다. 선학원은 한국의 전통 불교를 수호하고 일제의 사찰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2년 선우공제회를 결성하면서 자주 자립을 위해 식민지 불교정책으로 만연하게 된 계율 파괴와 전통의 상실을 우려한 승려들이 구속을 피하면서 일제 불교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설립되었다. 검푸른 암벽과 붉은 토양에 우뚝 선 바위 밑에 자리한 일출선원은 본래 신라시대의 사찰터로 전해오다 1914년 경주 기림사에 주석하던 혜광 스님에 의해 인법당으로 중건한 후 1972년 불자들에 의해 대웅전이 세워졌다. 큰 사찰은 아니지만 불사를 이끌던 사부대중(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의 신심과 수행만큼은 깊었다 전해진다. 대웅전과 산령각, 요사 한 동이 일출선원의 건물 전부이다.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이들이 조용히 기도하고 수행하기 좋은 토굴의 느낌이 드는 곳이다.

고석사(포항)

고석사(포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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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로 526

포항시 남구 장기면 묘봉산에 있는 고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 어느 날 경주에 있는 궁궐에 동쪽으로부터 세 줄기의 서광이 비쳐 그 빛이 연 3일간 계속되었다. 선덕여왕의 명으로 혜능 국사가 서광이 발하는 곳을 찾아가니 한 바위에서 서기가 발하는지라 그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고 절을 지었다. 그리고 오래된 바위에서 서광이 발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고석사라 칭하고, 뒷산은 기암괴석이 동해를 바라보며 솟아있어 망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미상이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보광전은 주심포집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며, 안에는 자연석을 깎아 조각한 높이 281cm의 석조여래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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