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캠핑장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캠핑장 – 서울, 성남 등과 가까운 남한산성에 계곡을 끼고있는 캠핑장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캠핑장 캠핑장 대표 사진

서울, 성남 등과 가까운 남한산성에 계곡을 끼고있는 캠핑장

남한산성 캠핑장 위치 및 연락처

  • 주소: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144
  • 전화: 031-747-9488
  • 예약 페이지: 바로가기

운영 정보

  • 예약 구분: 온라인실시간예약
  • 민간 캠핑장, 직영으로 운영 (운영)
  • 운영기간: 봄,여름,가을,겨울
  • 운영일: 평일+주말
  • 업종: 일반야영장
  • 입지: 산

캠핑 사이트 정보

  • 일반야영장: 30면
  • 자동차야영장: 36면
  • 개인 카라반: 22면
  • 사이트 바닥: 파쇄석 32개, 데크 4개

부대시설 및 안전 설비

  • 화로대: 개별
  • 부대시설: 전기,무선인터넷,장작판매,온수,트렘폴린,물놀이장,운동시설
  • 주변이용가능시설: 계곡 물놀이

이용 안내

  • 개인 트레일러 동반 가능
  •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
  • 애완동물출입: 가능

남한산성 캠핑장 1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2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3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4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5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6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7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8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9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0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1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2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3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4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5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6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7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8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19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20번째 이미지남한산성 캠핑장 21번째 이미지

주변 캠핑장 5선

주위 관광 정보

남한산성 전통무예

– 홈페이지
https://namhansansungtma.quv.kr/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240-28

‘무예도보통지’ 남한산성전통무예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으며 옛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선조들 전통의 숨결을 보유한 곳이다. 한양을 지키던 남한산성 안에서 조선 후기의 무예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와 남한산성 유네스코 지정 홍보 및 무예 체험, 의상체험, 국궁체험 등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인 전통 무예의 발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한산성(유네스코 지정), 남한산성전통무예, 둘레길 체험 등 서비스를 제공하여 경쟁력 강화와 지역관광에 기여하고 있다.

경기광주 한옥마을

경기광주 한옥마을 사진
– 홈페이지
http://www.hanokmaeul.com

– 주소
경기도 광주시 새오개길 39 (목현동)

400년이 넘은 충남 광천의 사대부 한옥을 그대로 옮겨 복원시켰다. 1,0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소나무들이 한옥과 어우러져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수려한 자연 속에서 한옥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며 삶의 여유를 느껴볼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산기슭 아래 한옥스테이와 카페가 위치하고 있어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은고개

은고개 사진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 248-2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와 검복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서울과 광주를 연결하는 도로가 통과하는 곳이다. 은고개는 문헌상에 엄현[掩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광주부 도엽에는 남한산성과 길이 통하는 요충지로 돈대를 쌓아 적의 동태를 감시하며, 위험이 닥치면 신호를 보내게 하는 곳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은고개는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남한산성과 연결되어 있어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과 연계하여 산행을 할 때 많이 찾는 곳이다. 주변으로는 다양한 맛집과 카페가 조성되어 있어 맛집을 위한 방문객도 끊이질 않는다. 은고개와 가까운 엄미리 마을에서는 2년에 한 번 음력 2월에 장승제가 열린다고 하니 함께 방문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

광주 조선백자 요지 사진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해공로 91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1985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발굴된 곳으로 ‘번천리 5호 가마’로도 불린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약 5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백자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1400년대 중반부터 조선백자 중 가장 우수한 백자를 구워냈으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크기의 백자 요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백자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가마터와 공방 터 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전시품과 가마 발굴부터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도자기 종류와 정보, 유물, 출토품 등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의안대군방석묘역

– 홈페이지
https://www.gjcity.go.kr/tour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 산 152

조선 태조의 8번째 아들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석(李芳碩, 1382~1398)의 묘역이다. 의안대군은 신덕왕후(神德王后)의 강씨의 아들이며, 태종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방석이다. 아버지 이성계의 공훈으로 어린 나이에 고려 왕조에서 군기녹사(군대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직책)의 일을 맡았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고 태조 즉위 초에 세자 책봉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에 의해 1392년 8월에 세자가 되었다. 이후 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 때 피살되었다. 1406년(태종 6) 소도공의 시호가 내려지고 1680년(숙종 6) 의안대군으로 추봉 되었다.
1998년 4월 13일 경기도 기념물 제166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이씨의안대군파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묘역은 애기능이라 불리는 산능선에 정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묘의 좌우에는 문인석 2기가 세워져 있고 상석과 향로석, 묘비가 놓여 있다. 묘 앞에는 세자빈 심씨의 묘와 묘비가 있고, 묘역 뒤쪽에는 산신제단이 있다. 이 묘역은 고려시대 묘제의 특징을 지닌 조선 초기의 것으로, 돌담이 있고 봉분은 직사각형 모양의 호석이 둘러져 있는 한강이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광주시문화재단 광주시문화예술의전당

광주시문화재단 광주시문화예술의전당 사진
– 홈페이지
https://www.nsart.or.kr

– 주소
경기도 광주시 회안대로 891 (송정동)

광주시문화재단 광주시문화예술의전당은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클래식, 콘서트, 뮤지컬 등의 공연과 다양한 문화 예술 전시를 개최하는 복합문화 예술 공간이다. 2011년에 개관했으며, 270평 규모, 객석수 1038석의 남한산성홀과 44평 규모, 객석수 270석의 맹사성홀이 있다. 시에서 주도해오던 지역 축제 사업도 문화 재단이 맡으면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전혀 새로운 콘텐츠로의 변모를 시도하고 있으며, 청소년 음악콩쿠르, 허난설헌문화제, 찾아가는 영화관 등 문화 재단 특화사업도 다양하게 계획 중이다. 이 외에도, 8개의 예술 아카데미실에서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 발레, 성악, 수묵화 등의 다양한 예술 교육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또, 갤러리 1, 2에서는 지역 예술가와 공동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는 등 지역 문화 예술의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도자누리

도자누리 사진
–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dojanuri_office/

– 주소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420

도자누리는 지역 장애인 가정들이 모여 관광 기념품을 개발 및 판매하는 특수한 마을 공동체 기업이다. 틀림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장애인 가정의 섬세한 손길과 뜨거운 열정을 감동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다. 체험 공방 또한 운영하고 있어, 남녀노소,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도자기 프로그램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도자기와 가까워질 수 있다.

장경사(경기)

장경사(경기) 사진
– 홈페이지
http://jangkyungsa.or.kr/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676

장경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내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이다. 남한산성이 만들어지던 때 같이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승군[僧軍 ; 전쟁과 같은 나라의 위기 때 만들어지는 승려로 구성된 군대]은 전쟁 후에도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러 일을 맡았다. 남한산성 역시 당시 북쪽에서 새롭게 힘을 키우던 후금[後金]을 대비하여 벽암 각성스님을 책임자로 하여 승군을 동원해 서울의 남쪽에 새로 쌓은 대규모 산성이다. 이때 전국에서 올라온 승군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전부터 있던 망월사와 옥정사 외에 산성 안에 7개의 사찰을 함께 세우게 되는데, 장경사도 이 중 하나이다. 승군은 공사가 끝난 후에도 산성을 관리하고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어 9개 사찰에 머물면서 승려이자 군인으로 생활하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될 때 남한산성의 군사시설과 함께 승군의 주둔지인 사찰도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장경사는 이를 피한 유일한 사찰이었다. 1975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장경사는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에서 북쪽방향 망월봉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하여, 산성의 제1암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이 사찰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승려가 머무르며 생활하는 공간인 요사와 문루인 진남루, 작은 불전인 칠성각이 남아 있다. 승군이 주둔하였던 곳이기에 예불을 드리는 불전보다 요사의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남한산성벚꽃길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검복길 11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길에 있는 벚꽃길로 광주시가 1997년부터 산벚나무를 심어 조성한 길이다. 남한산성 동문부터 남한산성 입구까지 하천을 끼고 약 8Km 가량 이어져 있으며 팔당호 주변 10Km의 팔당호 벚꽃길까지 이어진 드라이브 코스는 경기도 Top 5에 들 정도이다. 4월 중순 경부터 약 1주일가량 절정을 이루며 하천 모습과 벚꽃 가로수가 조화롭게 펼쳐져 봄이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충서원

사충서원 사진
–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sachung

– 주소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232번길 89-8

사충서원은 ‘네 명의 충신을 모신 서원’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725년(영조 1) 노론 4충대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를 제향 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경기도 과천(현 동작구 노량진동)에 건립되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를 책봉하고 대리청정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지만 1727년의 정미환국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처럼 사충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그 후 1927년 봄에 이곳이 철도용지로 편입됨에 따라 당시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현재의 서울특별시 보광동)으로 이건 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다.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근래 자리를 옮겨 세운 탓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삼문만 복원되었다. 사당과 삼문이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서원 남쪽 가까운 곳에 수복청이 위치하고 있다. 삼문 오른쪽 앞에는 서원과 함께 옮겨온 묘정비는 정조 10년(1786)에 세워졌다. 오래되어 글씨가 희미해졌지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오재순이 글을 썼고 좌의정 홍낙성이 글씨를 썼다. 4대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알리는 내용이다. 비문의 왼쪽 면에는 1928년 사충서원 자리가 철도 용지로 편입되어 서원을 한강 상류의 보광리로 옮기게 된 사연이 기록되었고, 오른쪽 면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서원을 1968년 현 위치로 옮겨 새로 중건한 과정이 적혀 있다.
2020년에 서원최초로 한글홀기편람을 제작하여 한글제향을 지냈고, 2022년에는 사충신순절300주년 행사가 있었다. 2023년에는 사충신의 영정사진이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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