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 캠핑랜드

[경상북도 경주시] 별자리 캠핑랜드 – 경주 남산 앞에 둥지 튼 낭만적인 캠핑장


경상북도 경주시 별자리 캠핑랜드 캠핑장 대표 사진

경주 남산 앞에 둥지 튼 낭만적인 캠핑장

경주명산 남산과 밤하늘이 아름다운 별자리캠핑랜드는 평지에 위치해 거칠 것 없이 하늘과 자연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수영장 트램펄린 등의 시설을 갖추었고 넓은 부지는 아이들이 뛰놀기 좋습니다. 반려견 카라반은 반려견과 함께 숙박하며 강아지운동장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며 강아지 샤워시설과 드라이기, 밥그릇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새로운 글램핑 및 어린이공원 등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별자리 캠핑랜드 위치 및 연락처

  • 주소: 경북 경주시 반구대로 3501-34 (배동)
  • 오시는 길: 경주ic에서 5분거리, 경주 시내에서 10분 거리이며 5분거리에 내남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고기 등 장보기 좋습니다.
  • 전화: 0507-1342-2108
  • 홈페이지: 바로가기
  • 예약 페이지: 바로가기

운영 정보

  • 예약 구분: 온라인실시간예약
  • 민간 캠핑장, 직영으로 운영 (운영)
  • 여행시기: 봄,여름,가을,겨울
  • 운영기간: 봄,여름,가을,겨울
  • 운영일: 평일+주말
  • 특징: * 시원한 남산뷰, 야외활동하기 좋은 넓은 부지의 캠핑장. * 대형 수영장, 농구장(하프코트), 족구장, 탁구장, 그네, 트램폴린, 모래놀이터, 미니골프 완비. 추후 부대시설 확장 예정. * 매점에서 보드게임, 배드민턴 등 무료대여 가능. * 덤프스스테이션 사용 시 별도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업종: 일반야영장,카라반,글램핑
  • 입지: 산,강,도심

캠핑 사이트 정보

  • 상주관리인원: 4명
  • 글램핑: 48면
  • 카라반: 16면
  • 이용 팁: 수건, 세면도구와 수영복(하절기)을 준비해주세요. 개인화기나 숯/장작을 개별적으로 가져와 사용하는것은 불가하나 캠핑체어, 탁자 등 간단한 도구는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부대시설 및 안전 설비

  • 화로대: 개별
  • 소화기: 60개
  • 방화수: 1개
  • 방화사: 1개
  • 화재감지기: 60개
  • 부대시설: 전기,무선인터넷,장작판매,온수,트렘폴린,물놀이장,놀이터,산책로,운동장,마트.편의점,덤프스테이션
  • 부대시설 기타: 족구장, 탁구장, 농구장(하프코트), 모래놀이터, 그네, 트램폴린, 강아지운동장, 파크골프
  • 주변이용가능시설: 산책로,수상레저,낚시,강/물놀이,어린이놀이시설

이용 안내

  •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
  • 애완동물출입: 가능

별자리 캠핑랜드 1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2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3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4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5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6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7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8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9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0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1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2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3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4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5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6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7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8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19번째 이미지별자리 캠핑랜드 20번째 이미지

주변 캠핑장 5선

주위 관광 정보

신라 월성대군 단소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포석로 534-1

신라 월성대군 단소는 월성 박 씨의 후손 11위를 모신 곳으로 2005년 월성 박 씨 대종회가 조성했다. 월성대군은 신라 박혁거세의 29대손 경명왕의 8번째 왕자 박언의를 일컫는다. 박언의는 월성대군에 봉해졌을 당시부터 월성 박 씨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신라 월성대군 단소엔 넓은 잔디와 다양한 식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여유롭게 산책이 가능하고 첨성대를 비롯해 경주 교촌한옥마을, 동궁과 월지 등이 가까이 있어 연계 관광도 용이하다.

경주 경애왕릉

경주 경애왕릉 사진
–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3-1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재위 924~927)의 무덤이다. 경애왕은 신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명왕의 동생으로,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사를 보내어 고려를 도왔다. 927년에 포석정에서 제사를 지낸 후 연회를 베풀던 중 그곳을 기습한 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덤은 삼릉계곡 입구의 소나무 숲 안에 있다.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가라며 둘레돌로 보이는 석재가 일부 드러나 있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삼릉숲

삼릉숲 사진
–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삼릉숲은 경주 남산 서쪽에 위치한 소나무 숲으로 삼릉이 위치해 있으며, 능 주변으로 아름드리 도래솔이 군무하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경주 남산은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 모두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국가 신라의 중요한 국사를 의논하던 사령지이면서 초기 궁궐지, 왕릉, 불교 조각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분포되어 있는 신라와 경주의 신령스러운 공간이다. 그리고 김시습이 남산 금오산실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 소설 금오신화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한 문학적 고향이기도 하다. 경주는 다양한 역사 수림을 간직한 역사 도시로 사진작가들에게 숲 촬영지로 가장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들 사이로 내리는 햇빛은 가히 환상적이며 봄날 소나무 사이로 피는 진달래도 진풍경 중 하나이다.

경주 배동 삼릉

경주 배동 삼릉 사진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

경주 배동 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졌다.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경주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 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사진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65-1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경주 지마왕릉

경주 지마왕릉 사진
– 홈페이지
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30

신라 제6대 지마왕(재위 112~134)의 무덤이다. 지마왕은 신라 5대 파사왕의 아들로 태어나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지마왕의 재위 기간에는 신라는 백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들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 남쪽으로 200m 떨어진 남산 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왕릉 중에서는 작은 편에 속하며,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남산 화강암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남산 화강암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사진
– 홈페이지
https://geotourism.or.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341-126 (배동)

경주시의 남쪽에 위치한 남산은 금오봉과 고위봉을 중심으로 한 긴 타원형의 화강암 바위산이다. 화강암은 석재로 흔히 쓰이는 대리암이나 석회암에 비해 단단하고 비와 바람에 잘 깎여나가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남산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오랜 시간 동안 잘 보존된 것은 화강암의 이러한 특성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산 화강암은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손꼽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 때도 쓰였기 때문에 신라인들이 남산 화강암을 문화재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인들은 남산의 바위절벽을 이용하여 남산 문화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마애삼존불좌상, 선각여래좌상, 마애석가여래좌상과 같은 불상들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바위 절벽은 남산 화강암에 흔히 잘 발달하는 수직 틈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다른 화강암들보다 남산에 분포하는 화강암이 특히 수직 틈을 많이 가지는 이유는 아주 오래 전 이 지역에 단층활동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341-126 (배동)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남산의 좌불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바위 자체가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어 조각된 불상이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살펴 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했으나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이곳에 있는 다른 불상들의 세련되고 단정한 얼굴과는 달리, 이 불상은 약간 투박한 느낌을 준다.

경주 포석정지

경주 포석정지 사진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

경주 남산 서쪽에 있는 포석정은 왕이 술을 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별궁의 하나였으나,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 때로 본다. 규모는 폭이 약 35㎝, 깊이 평균 26㎝, 전체 길이가 약 10m이다.
포석정은 중국 고대 강가에서 초혼제를 지내고 악귀를 쫓는 행사의 하나인 유상곡수연에서 유래하였다. 353년 중국의 왕희지가 쓴 난정서문에 보면 맑은 시냇물을 아홉 구비로 돌아 흐르게 하여 흐르는 물속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게 하되 술잔이 아홉 구비를 다 지날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술 3잔을 마시게 하였다. 유상곡수를 즐기는 주위는 높고 험한 산이 있고, 숲과 대나무숲이 있으며 옆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한다. 이에 신라에서도 험한 남산 봉우리를 뒤로 하고 죽림과 송림이 울창하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 포석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는 남산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었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고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이곳에 와서 남산 신의 춤을 따라 해 어무상심무를 만들었다 한다. 또한 이곳은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고 화랑이 정신을 도야하며 시문을 짓고 속세를 떠나 유정을 느끼던 아름다운 장소였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신라 천 년 역사의 치욕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화랑세기필사본에서 포석정을 포석사(鮑石社)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1998년 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에 규모가 큰 건물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기류도 출토되어 포석정이 연회를 즐기던 곳이 아니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장소였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입구 포석정지 방문자센터에서는 포석정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형과 영상물을 상영한다.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사진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두대안길 69 (율동)

경주 벽도산의 서쪽을 향한 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을 조각한 마애불[磨崖佛]이다. 이 불상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아미타불을 가운데에 새기고, 양쪽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새겼다. 아미타불의 머리는 아주 큼직하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낮게 있어 모자를 쓴 듯한데, 이는 굴불사지의 석조사면불상과 같은 양식이다. 얼굴은 볼에 살이 올라서 매우 풍만하게 보이며 미소가 남아 있다. 어깨는 넓고 반듯하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되어 몸의 굴곡을 잘 드러낸다. 오른손은 내리고 있고 왼손은 가슴에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어서, 이 불상이 아미타불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은 앞으로 내민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옆으로 반듯하게 벌리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풍만한 본존상에 비해 날씬한 여성미를 강조하고 있다. 몸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나 있으며, 발은 역시 옆으로 벌리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 위에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다. 이러한 손모양을 통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 또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이다. 이 불상들의 머리 뒤에는 모두 둥근 선으로 머리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경주 굴불사지석조사면불상과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풍만성이나 발의 모양, 옷주름의 모양 등으로 보아 제작 시기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imilar Posts

One Comment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